자기 기만(Bad Faith): 왜 인간은 자유로부터 도피하려 하는가?

1. 서론: 자유로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 철학은 인간의 의식( 대자 , Pour-soi )이 고통스럽고 절대적인 자유로 근본적인 특징을 이룬다고 주장합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원칙 때문에, 우리는 고정된 본성, 미리 정해진 목적, 또는 내재된 도덕률 없이 태어납니다. 이러한 근원적인 자유는 우리 인간성의 원천인 동시에,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잠재적인 이미지를 창조하기 때문에 막대한 고뇌(Angoisse) 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적인 책임의 무시무시한 무게에 직면하여, 사르트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는다고 관찰했습니다.  그들은 외부의 힘, 역할, 또는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고정된 대상인 척함으로써 자신의 자유와 책임을 부정하려고 시도합니다.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자유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이 자기 기만의 행위를 사르트르는 자기 기만(Mauvaise Foi, Bad Faith) 이라고 명명합니다. 이것은 *대자*가 스스로를 사물과 같은 즉자 (*En-soi*)로 변형시키려는 존재론적 시도입니다. 이 글은 자기 기만이라는 개념을 깊이 파고들어, 고뇌에 뿌리를 둔 그 기원과, 뚜렷한 발현 양상, 그리고 왜 그것이 사르트르 사상에서 부진정성(inauthenticity)의 궁극적인 형태를 나타내는지 탐구할 것입니다. 2. 본문: 자기 기만의 구조와 발현 양상 A. 선택의 고뇌: 자기 기만의 근본 원인 자기 기만의 주요 동력은 자신의 절대적인 자유를 직면하는 데 내재된 어려움입니다. 이 자유는 단순히 정치적,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것입니다. 어떤 과거의 행동도, 어떤 유전적 소인도, 어떤 사회적 꼬리표도 내가 막 하려는 선택을 결코 결정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나는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나의 과거의 결정 요인들을 무화(부정) 하고 새로운 미래를 투사할 수...

타인의 시선과 지옥: 사르트르 연극 '닫힌 방'을 통해 본 간주관성

1. 서론: 닫힌 방이라는 실존적 도가니

장-폴 사르트르의 1막짜리 희곡, 닫힌 방(Huis Clos, 1944)은 그의 복잡한 실존주의 존재론을 가장 내장적이고 즉각적으로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존재와 무보다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 연극은 사후 세계에 대한 냉혹하고 무시무시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세 명의 죽은 사람들—가르생, 이네스, 에스텔—이 창문 없는 방에 영원히 갇혀 있습니다. 그곳에는 고문 기구도, 불도, 악마도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곧 발견하게 되듯이, 공포는 오롯이 그들이 강제로 감금된 근접성과 그들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에 있습니다.

이 갇힌 공간은 사르트르의 타인(Autrui), 시선(Le Regard), 그리고 간주관성(L'Intersubjectivité)이라는 개념을 위한 문자 그대로의, 극적인 무대가 됩니다. 이 연극은 현대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로 절정에 달합니다. 바로 "지옥은 타인들이다" (L'enfer, c'est les autres)입니다. 이 말은 흔히 단순한 염세주의적 선언으로 오해됩니다. 그러나 사르트르 윤리학의 맥락에서 볼 때, 이는 심오한 존재론적 주장입니다. 즉, 개인의 주관적 자유가 타인의 판단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고 대상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글은 닫힌 방이 어떻게 사르트르의 간주관성 이론을 위한 완벽한 축소판 역할을 하는지 탐구하며, 왜 인간 존재가 진정성 없이 살아갈 때 영원한 갈등과 심리적 감금 상태가 되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2. 본문: 시선(The Look)의 역동성 해부

A. 자아의 대상화: 시선(Le Regard)의 힘

사르트르의 존재론에서, 개인의 의식(대자, For-itself)은 순수하고 역동적인 자유이며, 스스로를 정의하는 주체입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타인)에게 보이는 순간, 나는 순수한 주체이기를 멈추고 그들의 세계에서 객체(대상)가 됩니다. 이 과정을 시선(The Look, Le Regard)이라고 부릅니다. 시선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심오한 존재론적 사건입니다. 그것은 나의 초월성을 훔치고, 나의 유동적인 정체성을 타인에 의해 인식되는 고정된, 정의 가능한 본질, 즉 사실성으로 얼어붙게 만듭니다.

닫힌 방에서 이 대상화는 고문의 핵심 원천입니다. 겁 많은 평화주의자인 가르생은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통제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는 조종하려 드는 이네스와 피상적인 에스텔에게 자신이 영웅으로 죽었다고 설득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가차 없습니다. 특히 이네스는 그가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에서 벗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적대적인 시선은 그의 주관적인 이야기를 벗겨내고, 삶에서의 그의 비겁함에 대해 그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그의 본질—"겁쟁이 가르생"—은 그 자신의 선택이 아닌, 이네스의 시선에 의해 창조되고 유지됩니다. 따라서 시선은 자아를 자유로운 기획에서 판단 가능한 사물로 변모시킵니다.


B. 갈등으로서의 간주관성: 심판의 악순환적 삼각형

사르트르의 이론은 두 의식 사이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적대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나는 *나의* 시선을 통해 타인을 객체로 만듦으로써 나의 주관성을 되찾으려 하지만, 타인은 *그들의* 자유를 주장함으로써 저항합니다. 그러므로 간주관성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 즉 맹렬한 주고받기입니다. 닫힌 방 내부의 역동성은 이 악순환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가르생은 에스텔을 자신이 '용감하다'고 정의해 줄 수 있는 객체로 보고 그녀에게 인정을 구합니다. 그러나 이네스는 끊임없이 이 시도를 방해하며, 자신의 시선을 가르생에게 돌려 그를 다시 '겁쟁이'의 역할로 몰아넣습니다. 한편 에스텔은 가르생에게 인정을 구하며, 남자의 시선이 자신의 여성성과 아름다움을 확인해 주기를 필요로 합니다. 에스텔을 욕망하는 레즈비언인 이네스는 개입하여 *자신의* 시선을 통해 에스텔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이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에게 부과된 정의에 저항하는 삼각형에 갇혀 있습니다. 그들은 상호 필수적이며 상호 파괴적입니다. 그들은 타인의 거울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만, 그 거울은 항상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이미지를 비춥니다.


C. "지옥은 타인들이다":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가능성

연극의 상징적인 결론 대사, "지옥은 타인들이다"는 간주관적 갈등의 궁극적인 표현입니다. 이는 모든 타인이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대상화의 지옥이 내적이며 관계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닫힌 방의 고문은 외부의 신성한 존재에 의해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거주자들에 의해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가해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타인의 객관적인 판단을 영원히 의식하도록 선고받았습니다. 가르생은 자신의 자유—자신의 *대자*—가 영원히 훼손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본질—그의 역사에 의해 정의된 그의 *즉자*—가 이제 이네스와 에스텔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도망칠 수도, 그들의 판단을 잠재울 수도 없습니다. 그는 그들의 시선 아래 영원히 얼어붙어 있으며, 따라서 그는 결코 진정으로 자신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닫힌 방이 지옥인 이유는 진정성의 가능성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에게 진정성은 타인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판단에 *상관없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닫힌 방*의 등장인물들은 자기 기만에 헌신하며, 인정을 구하거나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그들의 간주관적 관계를 진정한 영원한 형벌로 만듭니다.

 

3. 결론: 자기 정의에 대한 윤리적 요구

사르트르의 *닫힌 방*은 추상적인 존재론을 무시무시한 도덕적 이야기로 변모시킵니다. 닫힌 방은 자기 기만(Bad Faith)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조건—우리가 끊임없이 타인에게 우리의 가치와 본질을 정의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우리의 근원적 자유를 포기하는 상태—에 대한 강력한 은유 역할을 합니다. 대자와 타인 사이의 갈등은 본질적으로 인간 공존의 비극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연극은 우리에게 희망 없이 끝나지 않습니다. 사르트르는 시선의 피할 수 없는 본질과 그로 인한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암묵적으로 윤리적 명령을 제시합니다. 즉, 타인의 시선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지옥이라면, 그 해독제는 진정성입니다. 그것은 갈등, 고뇌, 그리고 외부의 판단을 완전히 인식하면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선택하고, 자신의 자유가 갖는 궁극적인 고독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요구합니다. 실존주의적 과제는 타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부과하는 대상화를 지속적으로 초월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기획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연극의 절정에서 방의 문은 문자 그대로 열려 있지만, 그들은 나가지 않기로 선택하며, 그들의 감옥의 쇠창살이 항상 타인의 시선이었음을, 그리고 여전히 그러함을 증명합니다.